장르 획일화라는 착시, 그리고 큐레이션의 필요성 <지금 만화> 3호에 수록된 글로서 2019년도 시점입니다.
한국 웹툰의 장르 다양성은 긍정과 부정 모두에서 자주 거론되는 주제다. 2017년 2월 제출된 '한국 웹툰 콘텐츠의 아시아 시장 진출 확대방안 연구'(이정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웹툰의 특징과 함께 해외 시장에서도 강점으로 꼽히는 요인을 '다양성'으로 꼽았다. (p130) 웹툰 제작의 진입장벽이 낮으면 시장이 치열해지는데 역설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p156)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공모전 등을 통해 선정된 소수자가 데뷔하여 활동하는 출판만화와 달리, 도전만화와 나도 만화가 등 공개게시판에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웹툰 특유의 시스템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요인이 되었다.
네이버 웹툰 베스트 도전화면(2020년 5월 13일 캡처) 웹툰은 대중이 창작과 소비에 동시에 참여하는 미디어로 당대 독자의 취향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웹툰의 시대를 연 작품으로는 조석의 <마음의 소리>, 기안84의 <패션왕>을 들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기존 장르의 틀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마음의 소리>는 작가의 일상을 에세이처럼 보여주는 일상 툰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마음의 소리>는 일상에서 발견한 소재를 캐릭터화한 작가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과장된 개그로 변주하는 개그 장르다. 하지만 기존 개그 장르와는 구조가 다르다. 기존 개그 장르가 문제발생-해결 구조라면 마음의 소리는 문제발생-확대(해결의지 없음) 구조다. 동시대의 독자들은 문제가 거대하게 확대되는 과정에서 웃음의 코드를 읽는다. 아무리 개그만화라도 명확한 서사가 필요했던 이전 시대 장르와는 달리, '일상적 상황(소재, 캐릭터)+극도의 과장+해결(의지)없는 엔딩'이라는 구조는 당대 대중의 정서에 호응해 웹툰 특유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작가와 독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당대 대중을 사로잡을 새로운 장르를 찾아 성장한 웹툰이지만, 2017년 이후 점차 주요 플랫폼에서 주력 장르가 전면에 떠오르고 있어 웹툰에서는 장르의 다양성이 문제시되고 있다.
한국의 웹툰은 보통 "네이버 웹툰 스타일"과 "카카오페이지 스타일" 그리고 "레진 스타일"과 "톱툰 스타일"로 나뉜다. 학술적 용어는 아니지만 주요 플랫폼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작가-독자 사이에 형성됐다.
네이버의 웹툰 스타일은 마음의 소리나 패션왕 같은 해결(의지) 없는 엔딩 구조의 작품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평범한 주인공이 판타지적인 힘을 통해 주목받는 중심 캐릭터(속칭 인싸 캐릭터)가 되는 구조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외모지상주의>(박태준)는 못생겨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주인공이 잠들자 키가 크고 잘생긴 새 몸으로 활동한다는 만화다. 자고 일어난 것만으로 학교내에서 인싸로 주목받는 캐릭터가 되었다. 작품에서 몸이 변하는 법칙은 언급하지 않은 채 그저 인싸가 된 현실을 즐길 뿐이다. 여신의 강림(냥이)은 주인공의 연령대가 21세이지만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다. 평범한 주인공이 화장을 통해 말 그대로 '메이크업'되고 여신이 되는 이야기다. 자고 일어나면 외모가 변한 <외모지상주의>보다는 현실적 설정이지만, 안경을 쓴 평범한 여성이 화장으로 여신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못생긴 얼굴이 화장으로 여신이 된다는 것은 로맨스 장르에서 수십 년을 쓰는 매력적이다.
카카오페이지 광고 화면의 카카오페이지 스타일은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가 주류다. 로맨스 판타지는 새롭게 등장한 장르지만 주로 현실생활에 지친 여성들이 우연한 계기로 다른 세계로 빠져나와 멋진 상대를 만나 연애하는 구조다. 레진은 플랫폼 초기부터 기존 웹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성인물을 소개했다. 그래서 주요 수익원은 BL 장르와 남성 대상 성적 만화다. 투톤 스타일은 성인 남성을 겨냥한 성애 만화다. 네이버, 카카오페이지, 레진, 톱툰 모두 플랫폼의 트래픽 특성에 따라 수익을 주로 만들어내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
2014~2016년 웹툰 플랫폼이 독자를 끌어들이며 성장한 시기(트래픽 중심 성장)에는 한국 만화 사상 한 번도 없었던 100억원대 대규모 투자의 힘이 시장을 뒤흔들었다. 투자를 받기 위해 VC(Venture Capital)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은 숫자였다. 플랫폼은, 성장하는 트래픽을 보이기 위해서 많은 작품을 확충했다. 레진을 보면 기존 웹툰의 팬덤 흡수-트래픽 확대-투자 유치-새로운 웹툰의 대규모 론칭-트래픽 2차 확대-투자 유치의 사이클로 움직였다.
2017-18년이 되면, 1차 투자에 대한 결과를 나타내는 시기가 되었다. 투자가 확대되고 있던 시기에는, 모든 플랫폼이 트래픽을 늘리기 위해서 작품수를 늘렸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적극 수용했다. 예를 들어 레진의 경우 휘이의 숨결, 딴지의 딴지, 심우도의 카페 보문 등 주류 성향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도 연재 공간을 얻게 되지만 결과를 보여야 할 시기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시도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에 매달렸다. 그 결과 앞서 언급한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카카오페이지 BL과 성애만화=레진 성애만화=톱툰이라는 공식이 생겨났다.
▲ 네이버의 웹툰 장르별 분포(2019.5.25 기준) 웹툰을 보기 위해 앱을 켜 플랫폼에 접속하면 일정한 표정이 펼쳐진다. 독자에게 가장 익숙한 네이버 웹툰 장르별 보기에서는 일상 개그 판타지 액션 드라마 순정 감성 스릴러 사극 스포츠 등 10개 장르로 작품을 구분한다. 여러 장르로 중복해서 들어가는 작품도 있어 애매하지만 전체 작품의 수와 현재 연재 중인 작품 수를 구별할 수 있다. 완결작을 포함한 전체 작품의 장르별 비율이나 연재 중인 작품 장르별 비율은 모두 드라마 장르가 1위, 판타지 장르가 2위, 개그 장르가 3위, 완결작을 포함하면 일상물이 4위, 액션 장르가 5위, 현재 연재 중인 작품은 액션 장르가 4위, 일상물이 5위를 차지한다. 4, 5위가 바뀌었지만 드라마 판타지 개그 일상 액션 장르가 상위권이고 비중이 적은 장르는 스포츠 사극 감성 스릴러 순이다.
장르 구분을 봐도 네이버 연재작품에 마음의 소리나 패션왕처럼 해결(의지) 없는 엔딩 구조나 외모지상주의나 여신강림처럼 10대 취향의 선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칼을 휘두르다'(고일권)는 흑백으로 표현하는 중후한 사극이다. 꿈의 기업(문지현)은 전작 노네임드에 이은 정통 SF다. 스포츠 장르와 신나는 연애감정이 결합된 <같은 도장>(이힝)이나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돼지우리>(김강비천범식)도 흥미롭다. 그러나 돼지우리처럼 초기의 연재 독자들을 사로잡아 요일별 상위 순위가 되지 않으면 현재 연재 중인 441점의 작품 중 통작을 포함해 1,397편의 작품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기란 쉽지 않다. 네이버 웹툰을 구독했던 기존 독자들을 제외하면 새로 네이버 웹툰을 보기 위한 독자들은 연재 순위에 의존해 작품을 볼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찾지 않는다.
네이버의 260화 캡처 결국 웹툰 다양성의 문제는 의외로 큐레이션과 접속의 문제다. 일본은 복수의 잡지에서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증간호 시스템으로 한 편의 잡지를 계속 출간하고 새로운 작품과 장르를 모은 증간호를 출간한다. 특정 장르만으로 새 잡지를 창간하기도 한다. 카도카와(KADOKAWA)가 발간하는 월간 소년 에이스, 월간 영 에이스는 라이트 노벨 원작을 발굴해 커미컬라이징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잡지가 특정 장르를 대표하는 사례다. 반면 1990년대 한국의 잡지-단행본 시장은 일본만큼 크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몇 종 안 되는 잡지가 팔리지 않는 학원물과 판타지 만화에만 집중했다. 새로운 독자의 유입과 확장에 실패하면서 2000년대 이후 웹툰은 한국 만화의 주류가 됐다.
2019년 현재 웹툰에서 장르 다양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큐레이션과 접근성의 문제이다. 카카오페이지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로맨스, 로맨스 판타지.레진이나 탑툰등의 유료 플랫폼에서 어덜트 컨텐츠. 카카오페이지, 레진, 탑툰 등 유료 플랫폼은 투자에 비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작품에 집중된다. 광고, 배너 선전, 세트 판매와 같은 이벤트는 대체로 투자 수익에 대한 고려가 있다. 그래서 잘 팔리는 장르에만 집중한다. 다양한 유무료 플랫폼에 연재되는 작품이 뭐가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웹툰의 리뷰나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활성화되지 않아 독자들도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 디지털 심해에 깔려 있다.
SF 어워드 2018을 진행하며 기간 내 연재된 SF 만화들을 모두 살펴봤다. 책의 대상 작품은 2편에 불과하고 웹툰으로 연재된 작품은 73편이었다. 책으로 나온 2편 중 1편은 웹툰으로 연재된 조석 문유의 출간 버전이었고, 나머지 1편의 반바지 작가 슈뢰딩거의 고양공주도 첫 연재는 웹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전체 작품의 오리지널 연재는 모두 웹이었다. 그러면 75편의 SF가 2017년 6월 1일부터 2018년 5월 31일 사이에 발표되는 것이다. SF를 '사변 장르(speculative fiction)'로 확장해 판단하기도 했는데(사실 이전의 어워드도 좀비물이나 능력자물도 모두 범주에 포함하는) 75편의 SF 작품이 연재된다는 것은 놀라웠다. 엄격한 SF 장르 환경이나 장르의 편협성을 주장하기엔 다소 부끄러운 수치였다. 연재된 작품도 다양했다. 좀비물, 능력자물, 인공지능, 아포칼립스 등 SF의 하위 장르를 섬세하게 활용하고 그 속에서 인간, 사회, 자연, 존재, 우주 등의 문제를 탐구했다. 읽을 만한 작품은 많았지만 작품을 읽는 순간은 즐거웠다. 이 중에 내가 아는 작품이 몇 개나 있었을까? 75편의 작품 중 본선에 오른 작품은 모두 12편이다.
오세영의 <신도림>(네이버)은 지구 종말 이후를 그린 아포칼립스 장르로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보여준다. 문지현 <꿈의 기업> (네이버)은 거대 기업, 인공지능, 자각몽, 꿈의 제어에 의해 펼쳐지는 독특한 SF다. 애니영<엑스트라데이즈>(케이툰) 가족형 안드로이드를 제작하는 맥코에 패밀리에서 펼쳐지는 옴니버스 SF다. 홍정훈, 신월<드림사이드>(카카오페이지)는 좀비소설을 코미컬라이징한 웹툰이다. 지원-부딪치는 다음, 카카오페이지, 범툰, E코믹스, 리디북스 등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에 배급되는 작품으로 능력자가 등장하는 로맨스 SF다. OZI<언더그라운드 블러드팩>(다음)은 메카닉과 액션이 강조된 아포칼립스 장르. 강풀 '브릿지'(다음)는 작가가 구상하는 한국형 히어로 만화이다. 강풀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인간이 되었다」(레진)이라고 하는 안드로이드들이 실수를 극복하고 스스로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내 마침내 인류가 멸절한 시대,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고 하는 안드로이드 창조주의 이야기다. 월간 투믹스에 연재되는 이경탁 노미연 심혜수와 석정현, 무당은 무엇보다 압도적인 비주얼이 장점이다. <심해수>는 아포칼립스 장르 중 멸망 후 지구가 물덮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무당>은 제목처럼 SF에 무당이라는 한국적 소재가 결합된 작품이다. 윤필, 재수생 <다리 위의 차차차>(자스툰)는 가까운 장래에 다리 위에서 사람들의 자살을 막는 자살방지 로봇 CHA-88K 차차차 이야기다. 이야기꾼 윤필의 이야기를 재수생 특유의 연필 그림으로 서정적으로 풀어냈다. 대상을 수상한 키티콘, 김정환 <에이디>(재스툰은 대상 수상 카카오)는 '특이점'이 모든 시대를 배경으로 인공지능 로봇의 탄생과 그 후의 스토리다.

웹툰인 <심혜수>네이버, 다음,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레진, 투믹스, 탑툰, 케이툰, 배틀코믹스, 봄툰, 미스터블루, 리디북스 등의 플랫폼은 확장되지만 독자는 대부분 한두 개의 앱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작품을 소비한다. 아무리 비용을 투자해도 일단 플랫폼 안에 들어간 독자에게 외부로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작은 플랫폼 작품은 쉽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클툰(https://eccll.com)'이라는 플랫폼이 있다. 기독교 세계관 웹툰 채널 ecll.com 기독교계 웹툰을 연재하지만 린든 작가의 '비혼주의자 마리아' 같은 작품은 교회에서의 성폭력을 용기 있게 고발한 작품이다. 보다 많은 독자에게 소개되어야 마땅한 웹툰이지만,
그래서 웹툰의 다양성의 문제는 웹툰의 접근성이다. 넷플릭스처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반의 큐레이션 시스템을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레진 등 유료 플랫폼은, 독자의 취향을 분석해 작품을 추천하고 있지만, 하나의 플랫폼을 넘는 여러가지 리뷰와 추천의 구조가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문제다. 독자를 작품에 끌어들이는 강력한 리뷰는 눈에 띄지 않는다. 리뷰와 작품 구독의 능동적인 연계도 찾아보기 어렵다. 장르획일화라는 착시를 털어내거나 장르획일화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웹툰의 큐레이션 리뷰 구독의 연계는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 우선 대형 플랫폼부터 체계를 갖춰 나갈 필요가 있다. (박인하)
지금 , 만화 vol . 3 : genre dive r sity in comics 수록글
현재 만화 다운로드 링크 문화, 콘텐츠제작 종합지원센터, 지원사업, 인프라 구축, 인력양성, 문화사업 운영, 연구보고서 www.kocca.kr